포퓰리즘, 포퓰러리즘 - 잘못된 상식

작성자정병기

등록일2019-11-01

조회수386

포퓰리즘, 포퓰러리즘과 민주주의: 잘못된 상식

 

[출처] 외뿔소의 사방팔방|정병기의 시 영화 정치학

 

포퓰리즘의 오용과 올바른 뜻

 

포퓰리스트라는 말을 들으면 좋아할 정치인이 있을까요? 그런데 보수든 진보든, 서로 포퓰리스트라고 공격하고 비난합니다. 꼭 틀렸다고도 할 수 없는데, 올바른 것도 아니에요. 역시 잘못된 상식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이번엔 포퓰리즘에 대해 알아볼게요.

 

요즈음 포퓰리즘은 대개 ‘대중 (인기) 영합주의’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죠. 그런데 영어 사전에도 ‘대중 (인기) 영합주의’는 포퓰리즘(populism)이 아니라 포퓰러리즘(popularism)으로 나와 있어요. 포퓰리즘(populism)은 인민(people, 민중, 대중)의 견해와 바람을 대변하는 사상이나 정책이라고 풀이되어 있어요. 인민주의(혹은 민중주의, 대중주의)가 가장 적절한 번역이지요. 우리는 사전적으로도 분명히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인민주의, 민중주의, 대중주의 중 어느 것이 가장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해요. 그런데 이것은 매우 복잡하고 애매하므로 포퓰리즘이라는 영어 표현을 그대로 쓰는 것이 더 좋을 듯해요.

 

사실 포퓰리즘 개념 사용의 오류가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에요. 유럽 국가 등 정당 정치가 발전한 나라에서나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에서조차 대중 (인기) 영합주의라는 비난의 의미로 포퓰리즘을 사용하고 있어요. 어쩌면 이 오류는 의도적이라고도 볼 수 있지요. 이 오류들에는 포퓰리즘 개념이 실현 불가능한 정책을 남발하며 대중들을 현혹해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 한다는 비난의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포퓰리즘도 역사적으로 형성되어온 개념이에요. 따라서 역사적 의미사실 포퓰리즘 개념 사용의 오류가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에요. 유럽 국가 등 정당 정치가 발전한 나라에서나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에서조차 대중 (인기) 영합주의라는 비난의 의미로 포퓰리즘을 사용하고 있어요. 어쩌면 이 오류는 의도적이라고도 볼 수 있지요. 이 오류들에는 포퓰리즘 개념이 실현 불가능한 정책을 남발하며 대중들을 현혹해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 한다는 비난의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도 알아볼 필요가 있어요. 사전에서도 그 역사적 의미를 러시아 브나로드(v narod: 인민 속으로)와 미국 인민당의 이념에서 찾고 있어요. 이 두 가지를 고전적 포퓰리즘이라고 부르며, 이 고전적 포퓰리즘의 의미를 본래적 의미라고도 하지요. 19세기 말 러시아 나로드니크(narodnik: 인민주의자)가 브나로드로 알려진 계몽 운동을 벌였고,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도 인민당(People’s Party)이 창당되어 농민과 농촌 사회를 대변하는 운동을 벌였던 거예요. 인민당 이념은 말 그대로 포퓰리즘(인민주의)이며, 러시아 나로드니크의 이념도 영어로 번역해 포퓰리즘(populism)으로 불렸지요. 이 시기 포퓰리즘 운동은 농민, 즉 당시의 대중(인민)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농촌 민주주의의 복원을 시도한 사회 운동이었던 거예요. 그러므로 포퓰리즘은 ‘지배 집단 혹은 엘리트 계층에 대립되는 보통 사람(인민)에게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인민(혹은 민중, 대중) 중심의 사회 운동이나 그 이념’이라고 정의할 수 있어요.

 

네오포퓰리즘과 포스트포퓰리즘

 

그런데 안타깝게도 제2차 대전을 전후해 부정적 현상인 포퓰러리즘이 포퓰리즘의 본래적 의미를 잠식하기 시작했어요.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각각 권력을 장악한 이탈리아 파시즘과 독일 나치즘, 그리고 제2차 대전 직후 아르헨티나에서 집권한 페론이즘이 그 결정적 계기였어요. 그에 따라 포퓰리즘은 페론이즘에 의해 실현 가능성 없는 선심성 공약이란 이미지로 덧씌워졌고, 나치즘과 파시즘에 의해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의존하는 대중 선동 정치로 낙인찍힌 거지요. 페론이즘 같은 (좌파) 포퓰리즘은 주로 우파가 좌파를 비난하는 용어가 되었고, 나치즘이나 파시즘 같은 (극우) 포퓰리즘은 주로 좌파가 우파를 비난하는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어요. 특히 종전 후 최근까지 새로 등장한 유럽의 극우 정당들이 외국인 혐오적인 자국민 중심의 대중 선동 정치를 펼쳐 신포퓰리즘(Neopopulism) 정당으로 불리면서 부정적 포퓰리즘 인식을 더 악화시켜 왔고요. 이렇게 포퓰리즘은 부정적 의미로 고정되는 듯했지요.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포퓰리즘은 다시 긍정적 의미를 획득하고 있어요. 남미의 최근 포퓰리즘 정당들을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고, 특히 남부 유럽에서 등장한 그리스 시리자(SYRIZA), 스페인 포데모스(PODEMOS), 이탈리아 오성운동(M5S) 등은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망을 주기도 하지요. 게다가 이 정당들이 집권까지 하게 되자 좌우를 막론하고 기성 정당들조차 새로운 포퓰리즘적 전략과 전술을 도입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이 현상들을 포스트포퓰리즘(post-populism)으로 불러요.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그림자’(Margaret Canovan)라는 말이 있어요. 사실 이 말도 부정적 의미의 포퓰리즘에 치우친 말이에요. 하지만 민주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말로 이해하면 될 듯해요. 적어도 대의 민주주의에 한정해서 본다면 포퓰리즘이 그 그림자인 건 맞아요. 그러나 이때에도 주의할 필요가 있어요. 대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의 가장 올바른 형태로 볼 때에만 그렇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과연 그런가요? 대의 민주주의보다 직접 민주주의가 더욱 훌륭한 민주주의 방식이 아닌가요? 지방 자치나 국민 소환, 국민 투표 등은 모두 직접 민주주의의 형태를 도입한 제도들이에요.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려는 노력들이지요.

 

포퓰리즘은 직접 민주주의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어요. 포퓰리즘 자체는 좌우 이념과도 관련이 없고 부정적 의미도 없어요. 나치즘, 파시즘이나 좌파 대중 영합주의는 포퓰리즘을 악용한 사례예요. 마치 스탈린주의자들이 인민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악용해 독재(전제) 정치를 정당화하고, 자본가들이 자유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악용해 자본의 전횡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말이죠. 민주주의는 아무 죄가 없는데 말이에요. 포퓰리즘도 마찬가지예요. 인민주의라는 말 그대로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그림자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본질에 더 가까워요.

 

부정적 포퓰리즘인 포퓰러리즘의 발흥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긍정적 포퓰리즘을 수용하고 발전시키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것은 직접 민주주의를 가능한 한 많이 실현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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